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 동맹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||[youtube(ay1QGPg2R98)]|| ||Italy backs out of Triple Alliance || ||<-2> [[파일:독일 제국 국기.svg|width=100%]] ||<-2> [[파일:이탈리아 왕국 국기.svg|width=100%]] ||<-2> [[파일: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 국기.svg|width=100%]] || ||<-2> [[독일 제국]] ||<-2> [[이탈리아 왕국]] ||<-2>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|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 || 이것은 [[1882년]] [[5월 20일]]에 체결된 5년 기한 방어 비밀 동맹이었으며 여러 차례 갱신되었다. 삼국 동맹과 [[삼국 협상]]은 대립하는 관계였으나, 삼국 협상이 체결된 건 [[러일전쟁]] 이후이니만큼 실상은 [[프랑스 제3공화국|프랑스]] 포위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. 삼국 동맹에 가입한 국가는 [[독일 제국|독일국]],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, [[이탈리아 왕국]]. [[1879년]] [[오토 폰 비스마르크]]에 의해 독일 제국,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의 2국 동맹이 체결된 후 2년 뒤에 이탈리아 왕국이 추가되며 완성되었다. ([[1881년]]에 프랑스가 [[튀니지]]를 점령하자 튀니지를 노리던 이탈리아 왕국은 반발하였고 그 반대급부로 삼국 동맹에 가입하였다.) 삼국 동맹은 근 30년간 유지되며 유럽의 세력균형에 기여했으나, 불안감을 느낀 이탈리아 왕국의 이탈로[* 단순하게 '이탈리아의 배신' 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. 애초에 동맹이 제3국을 공격하기 위한 공수동맹인지 아니면 제3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 발효되는 상호방위조약인지가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고, 그에 따라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은 공수동맹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반면, 이탈리아 왕국은 단순히 상호방위조약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. 여기에 오스트리아-헝가리가 세르비아에게 최후통첩을 준비할 때 독일하고만 논의를 했을 뿐 같은 동맹인 이탈리아와는 논의를 하지 않자 이탈리아도 삼국 동맹에 미련을 버렸다. 아무튼 이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 이탈리아가 계속 중립을 지키기를 바랐다.][* 거기다 이탈리아 입장에서 삼국 동맹은 '불편한 동맹'이기도 했는데,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은 [[리소르지멘토]]를 방해한 '원수'이자 [[쥐트티롤]]과 [[이스트리아]], [[달마티아]] 등 아직 남은 이탈리아 민족의 정당한 영토를 강점하고 있는 '압제자'였고 반대로 삼국 협상의 프랑스는 비록 중도 이탈하긴 했지만 어찌됐건 리소르지멘토를 도와준 국가였다.] 폐기되었다. 이탈리아 왕국은 1902년 프랑스와 밀약을 체결하여 밑밥을 깔아둔 후 [[1914년]] [[제1차 세계 대전]]이 발발하자 중립을 선언하고 동맹인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을 외면하였다. 이후 [[1915년]] [[4월]] 참전을 대가로 오스트리아-헝가리와 오스만 제국의 영토 일부를 약속하는 내용의 밀약을 영국, 프랑스와 맺고([[런던 밀약]]) [[1915년]] [[5월]]에 협상국 측으로 참전한다. ||1차 갱신 ||[[1887년]] || ||2차 갱신 ||[[1891년]] || ||3차 갱신 ||[[1896년]] || ||4차 갱신 ||[[1902년]] || ||5차 갱신 ||[[1907년]] || ||6차 갱신 ||[[1912년]] ||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